스타트업 일기 30

하루 4 건의 미팅을 마치고

연대 - 서울숲 - 역삼 - 낙성대까지. 하루 동안 총 4 건의 미팅을 마쳤다. 스타트업이란 게 그렇다. 하루에도 몇 번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여기서는 새로운 기회를 그려나갈 생각에 들뜨다가도 저기서는 냉철한 피드백에 낙담하기도 하는. 이 모든 것을 성공이냐 실패냐의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보면 버티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지만, 좋은 얘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얘기를 들을 때가 훨씬 많으니까. 오늘도 그랬다. 이제까지 좋은 지표를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날카로운 지적에 바짝 정신 차려야겠다고 다짐했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얼마나 배우고 성장하는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0 to 1) 일이니까. 누가 봐도 되기보다 안될 확률이..

큰 물에서 노는 게 중요한 이유

사람이 성장하는 데 있어 그릇의 크기를 결정하는 파라미터는 세계관이다. 여기서 세계관의 정의는 “그 사람이 보는 시야의 넓이”이다. 당장 중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해보자. 학창 시절에는 학교와 학원이 세상의 전부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밖의 실제 세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경험이 없다. 그러니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엊그제 본가에 내려가 방을 치우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희망 대학 및 학과를 적은 종이를 발견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 당시에 저 학교에 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저 학과를 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 채 썼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 사람의 세계관을 작게 가두면 된다. 보는 시야가 좁으면 걱정하는 일의 규모도 쪼그라든다. 세계적..

스타트업 일기 2021.05.28

초기 투자사를 정하는 건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과 같다

오늘 뜻하지 않게 세 번째 투자사를 만났다. 교수님 소개 덕분에 심사역분과 커피챗을 가지는 기회를 얻었다. 이제까지 두 곳에서 투자 제의를 받고서 들떴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피드백을 좋지 않게 받아서? 그런 건 아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좋게 봐주셨다.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셨고 자료를 보내드리면 다른 투자사보다 훨씬 더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향으로도 진행 가능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다만 해주신 조언이 머릿속에 맴돈다. 초기 투자사를 고르는 건 결혼할 상대를 정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오간 대화는 훨씬 실무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요지는 같았다. 당장 자금을 마련해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이상 후속 투자를 얼마나 잘 끌어올 수 있는지, 얼마나 케어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을 잘 생각해보라고..

사업의 결과는 돈이다

첫 고객사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해 계약을 체결했다. 샘플 테스트를 위한 소규모 프로젝트부터 먼저 해보는 식으로 논의가 오갔다. 작은 금액일 수도 있지만 분명 숫자로 찍힌 결과물이다. 심지어 동일 고객사로부터 후속 프로젝트 계약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하게 됐다. 초기 목표를 이뤘다. 설립 첫 달부터 돈을 버는 게 목표였는데 법인 설립도 전에 매출을 찍었다. 투자로 연명하는 사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숭고한 목적이건 사업의 결과는 명확히 금액으로 찍힌다. "고객의 지불용의가격은 느낀 가치만큼이다." 세계적인 경영학계 석학이자 가격 컨설턴트인 헤르만 지몬의 저서 에 나오는 말이다. 고객에게 충분한 가치를 주지 못했다면 절대 돈을 벌 수 없다. 공격적인 영업 끝에 두 번째 잠재 고객과도 프로젝트 미팅 일..

포브스가 선정한 창업가 선배에게 들은 3가지 조언

25세 클라썸 이채린 대표, 美 포브스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30인' 클라썸. 밀레니얼 창업가 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회사 중 한 곳이자 학교 선배이신 이채린 대표님께서 창업한 회사이다. 최근 포브스 선정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30인에 선정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오늘은 참가하고 있는 교내 창업경진대회에서 마련해준 선배와의 멘토링 세션으로 클라썸 이채린 대표님, 최유진 부대표님과 약 1시간가량 Q&A를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와닿는 조언이 많았지만 크게 3가지로 정리해봤다. 1. 팀원을 데려오고 동기부여를 도울 때는 Expectation setting이 중요해요. “이 사람이 우리 회사의 어느 팀에 지원할 때 어떤 걸 기대하고 왔을까? 어떤 역할을 맡고 싶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을까..

스타트업 일기 2021.05.18

당연한 것들은 처음부터 당연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처음부터 당연한 게 아니었다. 원래부터 침대에서 자는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무언가를 들고 다니려면 가방을 메는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스마트폰도 10년 전에는 당연한 게 아니었다. 당연이라는 말은 이데올로기다. 당연하지 않던 게 당연해지기까지는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골프채에서 가장 비거리가 긴 클럽은 드라이버다. 이 비거리를 위해 티타늄부터 시작해 온갖 첨단 소재가 투입된다. 하지만 그건 수백 년 골프 역사에서 고작 5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원래 드라이버는 나무로 만드는 게 당연히 여겨졌다. 그래서 드라이버를 비롯해 장타채를 "우드(woods)"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나무와 첨단 소재를 놓고 보면 첨단 소재가 비거리, 타구음 등 ..

스타트업 일기 2021.05.14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방법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본질은 벡터량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짜는 바깥에서 자기 자신을 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남들이 보는 나, 세상이 보는 나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더 그럴듯한 사람으로 비칠지, 더 위대한 대표로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다 보면 세상에 이름난 리더의 모습을 카피하기 시작한다. 제2, 제3의 누군가를 표방한다. 하지만 진짜는 자신에서 출발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시장을 향해, 고객을 향해, 동료를 향해 움직인다. 이 벡터의 종점은 나 자신에 있지 않고 바깥으로 뻗어있다. 물론 이들도 세계적인 리더의 모습을 모방할 때가 있다. 하지만 시점이 자신에 있는 이상 벡터의 길이를 늘릴지언정 그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수단으로 활용할 뿐, 목적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좋은 가..

스타트업 일기 2021.05.13

신뢰는 Show&Prove에서 나온다

“사업은 절대 할 생각 마라.” 이전부터 귀가 닳도록 듣던 말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이요,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도 명절만 되면 나를 옆에 앉혀두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게 가장 좋다고 내내 말씀하셨다. 처음으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마 2년 전이었다. 일단 좋은 직장부터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 정 사업이 하고 싶으면 일단 사회 경험부터 쌓고 해도 늦지 않다, 아니면 취업이 안 돼서 그러는 거냐 등. 답답했다.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실현하는 길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이에 공감해주지 않았다. 아니, 않는다고 생각했다. 확신을 주고 싶었다. 좋은 직장?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이 유명한 대기업이라면 지금 당장도 들어갈 자신이 있다. 들어가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걸 보..

왜 시작은 반일까?

"시작이 반이다." 고작 한 문장 가지고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누구에게는 '시작만 해도 이미 반이나 간 것이나 다름없다'는 긍정 어린 말이다. 다른 이는 시작해봐야 고작 반밖에 못 간다는 자조 어린 메시지로 쓴다. 내게는 어떨까? 딱 반만큼만.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말 그대로 딱 반만큼만 가게 해준다. 시작 버튼은 그런 존재다. 누르지 않으면 절대 그 여정에 뛰어들 수 없지만, 시작 하나 눌렀다고 만사형통도 되지 않는. 그런데 이상하다. 대체 어느 시점을 시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이 글을 언제 쓰기 시작했을까? 글을 기록한 시점은 발행을 누른 시간에 머무른다. 하지만 아무도 발행 시점을 시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블로그 글쓰기 창에 자판을 처음 누른 순간이 시작일까? 아니면 블로그..

일하기 좋은 직장

1. 어느 날, 나는 관리자 한 명이 6개월 넘게 부하 직원들과 면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관리자들을 직접 불러다 놓고 교육까지 시켰는데. CEO의 권위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었나? 3.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해야 할 일'을 지시하기만 했지,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한 적이 별로 없었다. 사장의 권위만으로는 그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없는 것이었다. 4. 이 사태는 무엇보다 직원 면담의 중요성을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나는 왜 바쁜 관리자들을 불러 모아서 교육이란 걸 시킨 걸까? 왜 굳이 직원들과 일일이 면담을 하라고 지시한 것일까? 5.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자, 나는 곧장 그 관리자의 상사를 내 사무실로 불렀다. 6. "내가 오늘 회사에 출근..

스타트업 일기 202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