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낯선 것을 두려워 한다. 그것을 선택했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크다고 느낄 수록 더욱 그렇다. 이십몇 년을 윈도우와 함께 살았던 내게 맥은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다. 감내해야 할 비용은 금액만이 아니었다. 다음 노트북으로 맥북을 살 것이라 다짐했던 게 2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실천했다. 금전적 리스크보다 앞으로 적응하며 버텨야 할 시간에 대한 부담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게 물건이 아닌 커리어라면 어떨까? 팀 대표를 맡게 됐다. 걱정이 컸다. 데이터 분야에서 아이템을 선정했지만 다른 팀원들과 비교했을 때 내 연구 주제가 아이디어와 가장 거리가 멀었다. 이런 유형의 비즈니스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과연 팀을 이끌 수 있을까? 전략경영학회를 할 당시 멘토를 했던 친구와 점심 식사를 하며 고민을 토로했다. “걱정마. 원래 대표는 팀원 중에서 제일 멍청한 사람이 맡는 거야.” 인생 선배인 그의 까대기가 묘한 위로를 줬다. “이 책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야.” 건네준 건 말뿐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알지 못하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
조언을 구한 덕분에 알게된 책 <루키 스마트>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루키는 전문가조차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신참내기를 일컫는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입문한 자가 전문가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머쥐었을 때 쓰는 표현이다. 여기서 “행운”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운이 좋아서 어쩌다 한두 번 성취한 것일 뿐”이라는 까내리기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현상을 다르게 설명한다. 미숙함이 오히려 눈부신 성과를 안겨주는 열쇠라는 것이다. 이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1. 배운 사람과 배우는 사람
흔히들 신참내기라고 하면 어리벙벙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에 가득차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미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태도가 좋은, 하지만 아직 경험이 없는 신참내기에게 일을 맡기면 그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불도저가 아니었다. 돌다리를 하나씩 두들기며 건너는 쪽에 가까웠다.
“관련 지식이 여전히 부족했던 나는 제품 전문가와 임원들의 조언을 열심히 구했다. 또한 경험이 없었기에 신중히 일하면서 이해 관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고, 지속적으로 의견을 물었다.” - <루키 스마트>
하지만 이것이 루키가 스마트하게 성과를 내는 비결이었다. 이들이 전문가와 다른 건 “질문하는 태도”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르기에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익히려는 마인드셋과 행동 방식이 이들 성과의 근원이었다. 이들은 함부로 움직이고 시도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데이터를 수집하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반면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는 경험에 의존하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난관에 봉착한다.
2. 배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신선한 주장을 제시한다.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봤을 1만 시간의 법칙이 직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시카고 대학 행동과학자의 실험 결과를 인용한다.
“병리학자들에게 환자들의 생체 검사 결과를 보고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예측하라고 지시했다. 임상 경력이 높은 전문 병리학자 개개인의 예측보다 이제 갓 진입한 병리학자들의 판단을 종합한 데이터가 훨씬 높은 정확도를 선보였다.” - <루키 스마트>
그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육체적, 기술적 기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한다. “에릭슨의 유명한 연구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같이 정확한 육체적 동작을 터득해야 하는 직업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유럽 연합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지식 노동자에게는 주위 사람들의 기술과 역량을 동원하는 능력이 경험의 양보다 경영 성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확신한다. “경력에 필요한 대다수 기술은 20시간만 연습하면 충분히 익힐 수 있다.”
다시 루키를 보자. 루키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에 주변의 가용 자원들을 모두 활용해야만 했다. 이들은 주변 네트워크를 하나씩 연결하며 어떻게든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과 만나기 위해 애썼다. 하나라도 더 물어보고 조언을 구했다. 그렇게 모은 집단의 경험이 그들이 제공하는 가치로 탈바꿈했다. 그들이 짜낸 아이디어는 창의적인 두뇌에서 영감을 받아 번뜩 나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별 전문가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믿고 그 범위 안에서 답안을 찾는 동안 이들은 범위를 계속해서 넓히며 최적의 답안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신참내기가 무조건 우월하다는 게 아니다. 이들도 한 분야에 적응한 채 계속해서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면 루키의 성향을 잃고 만다. 반면, 저자는 오히려 위에서 말한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루키의 마인드셋을 지닐 때 기존 루키보다 훨씬 더 큰 퍼포먼스를 낸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하나다.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늘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고서 배우려는 마인드셋으로 임한다면 그 어떤 분야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어떤 사람보다 정말 무지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세상이 빠르게 변할 때 경험은 저주가 되어 우리를 가둔다.“ - <루키 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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