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공할 수가 없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남들보다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인 것이다. 감정을 제대로 통제한다는 것은 외부의 상황에 심리적으로 동요되지 않고 영향을 최소화하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 <어웨이크>
최근에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길이 없어 존경하는 분들께 도움을 구했다. 속마음을 털어놨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라고, 그래서 지금 내가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드니 어떤 스탠스를 취하면 좋을지 정리하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한 분이 그러셨다. 지금은 감정과 이성이 섞여있는 상태라고. 일단 감정부터 쭉 빼라고. 시간을 가지라고. 이미 잘하고 있다고. 함부로 선택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집에 와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진정하고서 생각해봐도 원래 생각했던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확신하던 차,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졸업을 앞둔 제자를 위해 손수 편지를 쓰시고서 사진을 찍어 보내셨다. 울컥하는 마음 반, 감사한 마음 반으로 당장 내일 찾아뵙고 편지를 직접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흔쾌히 승낙하셨다.
다음날, 교수님을 만났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며 결단을 내리는 걸 고민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니, 거의 확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해라. 사람은 늘 하던 대로 선택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감정으로 선택하고 이성으로 합리화한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내 선택의 기저에도 감정이 깔려있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뒷말이 와닿았다. 감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선택했다고 믿게끔 한다고. 사람의 선택에는 저마다의 패턴이 있다. 특히 약점을 건드릴 때 나오는 반응이 있다. 문제는, 디테일한 상황은 다를지언정 선택의 패턴이 같다는 것이다. 위기에 봉착하면 사람은 이제껏 해왔던 대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지인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높은 직위의 공무원인데, 자존심이 강해 조금만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있으면 "나 안 해!"하며 관두기를 하셨다고. 거기다 한 가지 더,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했다고. 예컨대 부동산을 사면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데는 능하나, 언제 팔지를 정하고 거기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좋은 기회를 많이 날렸단다.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한쪽 길로만 가면 다른 쪽 길이 나와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겨를이 없다. 수학적으로 보면 최적화를 해야되는데, 하던 것만 하면 local minima에 갇히게 된다. 그러니 내키지 않는 선택도 해보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실험을 해봐야 한다. 내가 어떨 때 감정이 격해지는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새로운 길에서는 어떤 하루하루를 쌓고 있는지를 기록해야 한다고. 일종의 실험이라 생각하고 연구노트를 쓰며 내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보라고 하셨다.
가만히 듣던 와중에 내 과거가 그려졌다. 늘 이것저것 시도하기를 즐기지만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했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호기심이 원동력이었지만 깊이가 얕았다. 천성이라 여기며 달리 바꾸려 하지 않았다. 대학원에 온 게 용할 정도다. 거기다 감정 기복까지 심했다. 일희일비하는 날이 많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바꾸려고 한 적이 있나?" 정말 깊이 있게 파고들며, 어떻게든 더 잘하는 내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친 적이 있나. 끽해야 학교 공부 정도였을까.
하지만 교수님 말씀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 힘든 걸 또 견뎌내야 한다고? 대체 얼마나?" 선택의 근거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이 선택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교수님께 여쭤보니 말씀해주셨다.
"건강, 윤리, 안전. 이 세 가지가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서는 그게 어떤 상황이든 빠져나와라. 그것만 아니면 어떤 상황이어도 좋다. 모든 게 다 배움의 길이다. 충분히 시간을 줘라. 한 3년은 깊게 파봐야하지 않겠니? 이제까지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해왔다고 했잖아. 그러면 이번에는 그렇게 해봐라."
"처음에 시작할 때의 방향성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네가 그냥 여기까지 온 게 아닐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걸 믿어라."
그리고서 또 한 가지 일화를 던져주셨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기다림이라는 키워드가 나올 때면 항상 교수님께서 드는 인물이다. 감정 조절의 달인, 그리고 기다림의 달인으로 유명했다. 어렸을 때 인질로 납치되어 남의 집에서 양자로 커야 했던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조금 더 찾아보니 인상적인 일화가 있었다. 어렸을 때뿐만 아니라 청년기를 지나서도 많은 굴욕을 당했더라. 한 전투에서는 처절하게 패배하다 못해 바지에 똥까지 지리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무라이라면 진즉 할복했어도 모자를 일이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그때 그 상황을 초상화로 그려놓았다. 심지어 석상으로까지 만들어놓고 매일같이 쳐다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되뇌었던 말은 두 가지였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앞으로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굴욕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상황을 되새기며 끊임없이 연구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밑으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열폭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천천히 생각하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정말, 정말 깊게 파고 들어야한다. 의문이 있으면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끝까지 알아낸다. 못하거나 실패한 게 있으면 좌절하지 않고 다음에는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끝까지 파고든다.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감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사람인 이상 감정을 배제할 수 없다.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그 너머의 몰입과 집중에 주력하자.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원한다면 그 상황마저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통제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어떤 부분에 집중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감정을 안정적인 상태로 계속 유지할 수가 있다." - <어웨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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