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일기

무덤 가서 자려다가 오늘 무덤 간다

Woonys 2021. 7. 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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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빨래 건조대를 새로 샀다. 4년 넘게 쓰던 옛날 건조대는 거치대가 늘 빠져 빨랫감 양이 조금만 늘어나도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건조대가 부서질 때마다 짜증이 확 일었지만 “조금 고장 난 정도지 아직 외형은 멀쩡한데 뭘”이라며 무관심으로 지냈다. 한 6개월 정도 버티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 다이소에 갔다. 만 원도 안 하는 가격에 아주 짱짱한 녀석을 데려왔다. 빨랫감을 올려봤다. 이전 같았으면 꼭 한 번씩 부서지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줬을 텐데 아주 깔끔하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다.

일주일 전에는 규조토 발 매트를 샀다. 이사 오고서부터 쓰던 천 매트는 물 흡수도 별로인 데다 청소하기는 또 얼마나 불편한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게다가 2년 가까이 쓰니 더럽기는 또 얼마나 더러운지 빨아도 영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매트 그거 거기서 거긴데”하는 마음과 “나중에 새것 사야지”라는 무관심으로 내버려 뒀다.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일 때마다 갖은 수고를 들이면서도. 샤워 후에 제대로 닦이지도 않는 물기를 억지로 닦으면서도. 결국 규조토 매트를 샀다. 비싸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달리 만 원도 안 하는 규조토 발 매트로 그간 묵은 스트레스가 한 방에 풀린다.

소비는 죄악이 아니다. 오히려 절약을 가장한 무관심과 방치가 악이다.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불행을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삶의 질 저하이다. 행복은 양이 아닌 빈도의 함수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좇는 것만큼이나 삶에서 불행의 빈도를 낮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자만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 후자에 대해서는 그리 고민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스트레스받고 말 뿐이다. 게다가 아끼려고 방치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여기서 의문을 가져보자. 왜 무관심했을까? 왜 방치했을까? 정말 절약한다고 더 좋은 물건으로 바꾸지 않은 걸까? 삶이 바쁘면 사소한 것들에 신경 쓰기 어려워진다. 문제는 그게 정말 사소한 것인가이다. 알게 모르게 하루의 행복을 갉아먹는 것들을 바쁘다는 이유로 해결하지 못한 채 방치해버린다.

두 번째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사람이 여유를 잃으면 생존에만 급급해진다. 시야의 범위가 좁아진다. 생각의 깊이가 얕아진다.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가 짧아진다. 삶의 순간을 돌아보고 숙고할 힘이 없어진다.

일이 바쁘면 삶이 위험하다는 신호다. 주 100시간을 해야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예전에는 워라밸을 이해하지 못했다. 죽는 날까지 일하는 게 미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쉬는 것 역시 일의 일환이다. 잘 쉬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에서 나를, 그리고 주위를 돌볼 힘이 생긴다. 훨씬 더 길게 보고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다. 잠은 무덤가서 자라는데 그러다 오늘 무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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