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일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feat. 중경삼림)

Woonys 2021. 4. 2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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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영화가 리마스터링으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달려갔다. <중경삼림>은 군대 있을 적부터 전역 이후까지 다섯 번은 넘게 본 영화다.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 소설 같은 스토리가 볼 때마다 여운을 줘서 좋아했다.

 

오랜만에 기대하며 봤으나 이상했다. 옛날에는 또렷이 느꼈던 그 감성이 애매하게 다가온다.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인 2부를 보던 중에는 졸기까지 했다. 한참 자주 볼 때는 다음 시퀀스에 무슨 장면, 어떤 대사가 나올지 다 알면서도 흥미롭게 봤는데 말이다. 크레딧이 올라오고 나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을 수 없는 건가 싶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생각해보니 인생 영화가 평생 똑같은 게 더 이상했다. 더 좋은 영화를 만나면 바뀔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나를 일관되게 고집하는 인생관은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취향이 바뀌는 건 좋은 신호다. 더 잘 맞는 걸 찾았다는 뜻이다. 보고 듣는 게 넓어졌다는 성장의 증표다. 좋아하던 게 싫어질 수 있고 싫었던 게 다시 좋아질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사랑과 이별 이야기보다 주체적 인생관에 초점이 맞춰졌다. 두 번째 스토리의 여주인공 페이가 그랬다. 언젠가 캘리포니아로 떠날 꿈을 안고 돈을 차곡차곡 모으던 그녀에게 짝사랑하는 남자가 생긴다. 결국 남자 주인공에게 호감을 얻어 만나자는 쪽지를 받는다.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의 카페에 1시간 일찍 도착해 기다리던 그녀는 시차가 13시간인 캘리포니아가 궁금해졌다며 그를 만나지 않고 진짜 캘리포니아로 훌쩍 떠난다. 1년 후에 만나자는 쪽지만 남긴 채. 기다리던 끝에 데이트 신청을 받았음에도 그보다 더 우선하는 욕망에 충실한 그녀의 모습이 와닿았다. 관점이 다르니 해석이 달라졌다.

 

주체적 인생은 순간마다 욕망에 충실할 때 만들어진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외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자세가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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