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일기

꼴리는 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 없는 이유

Woonys 2021. 4. 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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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은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다. 재료공학에서 배운 의미 있던 과목 중 하나는 열역학이었다. 아래 도표 하나에 인간이 담겨있다.

 

우리의 의사결정은 매 순간 선택으로 이뤄져 있다. 밥을 먹을까 아니면 잠을 잘까 등의 일상부터 이 직업을 택할까 혹은 이 회사를 택할까 등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까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내릴까?

 

인간의 선택은 열역학 법칙을 따른다. 물리적으로 안정하다는 말은 곧 자유에너지가 낮다는 뜻이다. 에너지와 엔트로피가 동적 평형인 지점이다.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게 맞는 표현이다. 돈은 안정을 준다. 명예는 안정을 준다. 어제보다 더 성장한 내 모습은 안정을 준다. 사소한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면 모험은? 더 큰 안정을 갖기 위해 일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림에서 왼쪽의 더 낮은 꼭짓점으로 내려가기 위해 오른쪽 꼭지에서 왼쪽 봉우리를 오르는 것처럼. 우리는 결국 어떻게든 더 낮은 에너지를 갖기 위해 몸부림친다. 우리 선택의 정량적 기준은 더 낮은 자유에너지다. 그러면 어떤 선택이 더 큰 안정감을 줄까?

 

최고의 안정 따윈 없다. 매 순간 최선만이 존재한다. 최고와 최선은 다르다. 최고는 최솟값이고 최선은 극값이다. 언제나 최고의 선택, 그러니까 최솟값을 찾고 싶지만, 문제는 어디가 최소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심지어 최소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우리 시야의 스케일에서는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떤 함수로 이뤄져 있는지 절대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개미가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정보 안에서 최선의 선택, 그러니까 극소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 관점에서 보면 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왜 역사는 되풀이되는지 알 수 있다. 어리석은 게 아니라 정해진 순리를 따른 결과다. 지나고 보면 더 낮은 극소가 무엇인지 보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 선택이 극소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 최소를 찾을 수 없다.

 

괜찮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어차피 우리의 선택은 저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매 선택에 고민을 많이 하는 타입이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게 자신에게 더 안정감을 주는 행위이기에 그런 거니까. 어차피 다 결정된 거니 맘 편히 살겠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것대로 결정된 거다. 다 꺼지고 내 길을 개척하겠다고 해도 그것대로 결정된 거다.

 

허망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희망찬 얘기다. 뭘 해도 이미 다 결정되어있는 거라면, 이왕이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는 게 낫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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