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사관학교 개발일지

잠깐의 소회(정글사관학교 87일차 TIL)

Woonys 2022. 1. 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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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 온 건가.. 요근래 아침에 제대로 일찍 일어나본 적이 없다. 심지어 어제는 뭘 잘못 먹었나 계속 근육통에 배도 아프고 하지를 않나..반대로 말하면 정글에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 몸이란게 참 간사한 게, 만약 지금이 정글 중반이었다면 그것대로 긴장이 빡 들어있었을 텐데, 10개월짜리 캠프면 10개월에 맞춰서, 5개월이면 그것대로 맞춰서 긴장이 느슨해지나 싶다.

 

어제는 같이 공부하는 형이랑 상담을 빙자해 긴 대화를 나눴다. 꼭 정글이라서가 아니라, 사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에 오랜 기간 머무르게 되면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이른바 "세계관의 축소"인데, 예전에 쓴 글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 있어 그릇의 크기를 결정하는 파라미터는 세계관이다. 여기서 세계관의 정의는 “그 사람이 보는 시야의 넓이”이다. 당장 중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해보자. 학창 시절에는 학교와 학원이 세상의 전부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밖의 실제 세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경험이 없다. 그러니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 사람의 세계관을 작게 가두면 된다. 보는 시야가 좁으면 걱정하는 일의 규모도 쪼그라든다(예컨대 당장 취업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라던가). 세계적인 엑셀러레이터 Y-콤비네이터를 설립한 폴 그레이엄은 저서 <해커와 화가>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런 작은 세계의 구성원은 어떤 행동의 결과가 그 세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물방울 같은 공간에 갇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조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별 볼 일 없는 모습으로 퇴화한다.

정글이 퇴화한다거나 나쁜 프로그램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고,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절대 지금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여기 역시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그저 거쳐가는 과정 중 하나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몰입하되 필요 이상으로 너무 과몰입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버리면 어느 순간 목적과 수단을 헷갈리게 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과몰입했나보다. 협력사 못 가면 인생 망할 것처럼 느껴지고, 취업 제대로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긴장과 두려움이 점점 커진다. 사실 별 거 아닌데.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정글에 왔거나 혹은 오고싶어할 것이다. 그 말인즉, 꼭 정글에 와야만 인생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닐 것이며(핵심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지 정글에 오는 게 아니니까), 정글에 들어왔다고 인생이 순탄대로인 것도 아니다(이미 겪고 있는 중). 이 또한 그저 흘러가는 것들 중 하나니까. 말이 쉬운 거긴 하지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 그리고 항상 생각하자. 이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전부가 되어서도 안되고. 무엇을 하기 위해 개발자가 되는 것이지 개발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게 아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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