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과 대학원생 일기

논문에 기죽을 필요 없는 이유

Woonys 2021. 5. 25. 23:43
반응형

사람들은 논문이라는 두 글자에 과도한 공신력을 부여한다. “이게 어느 논문에서 나온 결과야”라는 말이 논쟁에서 이기는 하이패스처럼 쓰이는 걸 볼 때도 잦다.

 

이는 비단 학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탠퍼드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에서 모든 나라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연구했습니다. 한국은 내일 아침 한국 전역에서 사용할 에너지의 85%를 햇빛으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무슨 연구인가 찾아봤다. Joule에서 나온 <100% Clean and Renewable Wind, Water, and Sunlight All-Sector Energy Roadmaps for 139 Countries of the World>라는 논문이다.

 

Supplement Information에서 table 8을 보면 리프킨의 주장에 대한 자료가 나와 있다. 주거단지에 태양광 집전기(PV)를 설치할 경우 5.62%, 정부 시설/상업 단지에서 3.47%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나머지 75%는? “나머지는 유틸리티 영역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여!”라는데 그 유틸리티 대부분이 산지 및 농지에 해당한다.

 

산지에 대한 논의야 워낙 많으니 둘째치더라도 농지에 대한 설명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야, 농지에 태양광 집전기 설치하면 니들 바이오 연료용으로 농사짓는 것보다 더 돈 많이 벌 수 있을걸?”이라는데, 확인해보니 한국에서 바이오 연료용으로 농사를 짓는 케이스 자체가 거의 없다. 애초에 에너지 생산용으로 쓰이는 곳이 아닌데 이런 가정을 때리면 어떡하나. 글로벌 스케일로 조사하다 보니 개별 국가의 디테일은 놓칠 수밖에 없겠다만 산지 및 농지 대부분을 태양광 산업에 쓴다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담론을 죄다 가정으로 때려 박은 이 자료로 우리나라가 청정에너지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다. 그것도 저명한 학자가.

 

연구라는 것은 숭고한 행위지만 그 과정과는 별개로 논문의 객관적 사실성에는 늘 의심의 여지를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주장이기 때문이다. 검증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를 객관적인 자료라고 들고 오면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이상 사실이라고 전제를 깔고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응형